* 이 글은 휴가 기간동안 개인적인 스트레스 해소와 일종의 훈련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6월 30일 저녁 7시 30분부터 작성을 시작해 7월 1일의 어느 시점까지 쓸 예정이었습니다만, 도중에 ‘휴가가 휴가가 아닌’ 상황이 발생해 글이 많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7월 2일이나 3일까지도 계속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수, 혹은 기획사 별로 쓴 글은 퇴고 없이 쓰는 대로 그대로 올라갑니다. 당연히 좋은 글 쓰기 방법은 아닙니다만, 오랜만에 여가 활동으로서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 아래의 인트로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에 관한 것으로, 각각의 글마다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이 글을 읽지 않고 특정 가수 부분만 퍼지면 왜 이 글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 같아서요. 어디론가 퍼가실 때는 이 글을 함께 가져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뭐 어긴다고 해도 제가 일반 네티즌들에게 저작권법을 적용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Intro - 음악 이야기 없는 음악 산업 이야기
나는 1992년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그 때 KBS에서는 가요 차트 프로그램인 <가요톱텐>을 방송했는데, 이 날은 공일오비와 넥스트가 1위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그 날 두 팀은 <가요톱텐>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들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한 TV에 출연하지 않았고, <가요톱텐>은 그럼에도 그들을 1위 후보로 올렸다. 아무리 보수적인 가요 차트 프로그램이라도,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뮤지션들을 차트에서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도 음반 판매 1위가 <가요톱텐> 1위를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 때 음반 판매 1~10위가 <가요톱텐>의 TOP 10과 비슷한 건 분명했다. 음반 판매량은 실제 가요 소비자의 의향을 보여줬고, (순위 선정에 관한 논란이 많긴 했지만) <가요톱텐>은 많은 사람이 아는 히트곡을 부른 가수의 순위를 보여줬다. 어느 한 쪽의 비중이 더 크냐는 차이만 있을 뿐, 인기의 기준은 간단했다. 더 많은 음반을 팔고, 그에 더해 노래가 더 많은 방송에 나가면 됐다. 밀리언셀러 가수에게 얼마나 많은 행사를 뛰는지, 얼마나 많은 CF를 찍는지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반면 2009년의 ‘인기 가수’, 더 엄밀히 말해 ‘톱가수’는 그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 지금도 음반은 팔리고, 가요 차트 프로그램은 방영된다. 하지만 정규 앨범을 50만장 이상 판매한 동방신기 같은 예외를 빼면, 요즘 가수들의 음반 판매량은 5만장만 팔려도 성공이다. 음반시장은 더 이상 시장 전체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음악 전문 채널에서조차 뮤직비디오 대신 리얼리티 쇼에 더 집중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송 횟수가 가수의 인기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 두가지에 디지털 음원 성적과 시청자 선호도, 혹은 ARS 투표 등을 더한 음악 차트 프로그램 성적도 미덥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음반시장과 방송횟수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이 두가지 기준은 열성팬이 많은 가수일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건 팬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 팬들이 지금 가요계를 그나마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소수의 팬들이 좌우할 수 있는 가요 차트가 전체 시장의 흐름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시청자 투표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시청자 선호도는 음악 시장의 실제 소비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집계에 포함한다. 이른바 ‘국민가요’를 뽑기에는 무난하지만, 그것이 시장의 역동적인 상황을 보여줄 수는 없다.
디지털 음원 성적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음원 시장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검색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디지털 음원 시장과 음반 시장 규모의 합은 2000년대 초반 음반 시장의 규모와 비슷하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이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가수와 기획사의 몫은 음반 시장의 전성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음원으로는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려울 만큼 성공했던 노래도 음원 수익으로 총 15억 정도를 벌었다. 또한 보통 가수들은 이 1/3만 벌어도 ‘대박’ 소리를 듣는다. 역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한 기획사는 소속 가수가 음원 시장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에도 회사 전체의 음반 판매량이 더 크다. 가수들이 10 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기만 해도, 디지털 음원 수익은 음반 수익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백지영과 케이 윌 등이 지난해 디지털 음원 차트 1위를 하고서도 그 시기의 최고 ‘스타’라고 하기 어렵고, 그들이 매일 서울부터 부산에 이르는 행사 대장정을 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디지털 음원 업체와 기획사 및 가수의 수익 배분을 개선하면 된다. 하지만 디지털 음원 업체가 굳이 현재의 계약 조건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그들은 재정적으로 취약해진 수많은 가수들의 음원 제작 및 유통에 참여, 가요계의 강자가 됐다. 또한 계약 조건이 바뀌면 가요계는 지금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한 달에 5000원이면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한국의 음원 사이트 정액제는 디지털 음원 업체가 절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창작 및 제작자가 과거 음반 시장 수준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정액제 요금을 올리거나, 극단적인 경우 곡당 판매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음악 시장은 음악에 그만큼의 돈을 쓸 용의가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만큼 자신이 확실히 좋아하는 곡, 확실한 팬덤을 가진 가수들이 더욱 강세를 보일 것이다. 지금 디지털 음원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듣는 노래를 알게 해주긴 하지만, 실제로 가수와 기획사가 얻는 수익을 반영하기는 어렵다. 다른 요소의 고려 없이 다만 음원 시장을 놓고 그 가수의 성패를 논하는 것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네티즌을 낚는 칼럼에나 쓰기 좋은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다.
1992년과 달리 2009년의 가요계는 한가지 요소만으로 가수의 인기를 보여줄 수 없다. 음반 판매량, 디지털 음원, 가요차트 프로그램 순위, CF 숫자 중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건 ‘Case by case'다. 중요한 건 단 하나, 가수와 기획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 수익 모델은 각자 다를 수 밖에 없다. 동방신기와 백지영을 음원 차트 성적만으로 비교하거나, 서태지와 전진을 방송 출연 횟수로 인기 여부를 가늠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이 글이 ‘음악 없는 음악 산업 이야기’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글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해당 가수의 음악에 관한 평가는 하지 않는다. 이 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활동한 가수들이 어떤 수익 모델을 가졌고, 그에 따라 어떤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시행했으며, 그것이 어떤 결과로 나왔는가에 대한 것이다.
2. 서태지 - 외출
서태지는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의 뮤지션이다. 모든 국민이 그를 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가 17년동안 쌓은 명예는 그에게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까지 선사했다. 또한 동시에 서태지는 가장 열성적인 팬덤을 가졌다. 서태지의 팬덤은 1만 5천장 한정으로 발매된 그의 스페셜 앨범을 순식간에 매진시키고, 서태지 심포니 공연에는 2만명 이상이 왔다. 또한 <8th Atomos Part Moai>(이하 <Moai>)와 <8th Atomos Part Secret>(이하 <Secret>)은 총 30만장 이상이 팔렸다. 이 중 <Secret>의 판매량이 10만장 이상이니, 서태지의 팬덤은 그의 컴백 같은 이슈 없이도 10만장의 음반을 소비할 만큼의 규모인 셈이다.
한국에서 가장 알려진 가수이면서, 실질적인 소비자의 상당수는 매우 열성적인 팬들인 서태지의 현재는 그가 독특한 수익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만들어낸다. 서태지에 대한 생각은 다르겠지만, 서태지의 인지도와 이미지, 팬덤의 열성이 결합하면 그것은 큰 이슈가 된다. KTF의 ‘서태지 폰’이나 MP3 플레이어 옙의 ‘서태지 에디션’은 서태지의 이런 특징이 반영된 상품들이다. 서태지의 팬들은 핸드폰과 MP3 플레이어를 살 의향이 있고, 서태지라는 이름과 상품의 높은 초반 판매량은 해당 상품에 대산 시선을 모은다. 다시 말하면, 서태지의 수익 구조는 서태지가 ‘휴먼드림’을 내놓으며 서울 한복판에서 팬들과 ‘쫄핑크댄스’를 춘 것과 비슷하다. 이 이벤트는 서태지가 팬들을 위해 벌인 것이다. 하지만 ‘서태지’이기 때문에 이 이벤트는 서울 한 복판에서 진행되고, 공중파 방송사는 이 모습을 방송한다.
그래서, 서태지는 <Moai> 발표 이후 가장 대중적인 영역 안에서 가장 팬들을 위한 이벤트중심의 프로모션을 펼쳤다. 삼성동에 설치한 UFO, ‘버뮤다’ 가사 해석 이벤트, ETP 페스티벌과 서태지 오케스트라 공연 등은 모두 그의 팬들을 위한 것이다. 공연은 물론이고, UFO 설치나 가사 해석은 서태지의 팬들이 과거부터 스스로 한 것들을 서태지가 이벤트화한 것이다. 또한 이 이벤트들은 모두 서태지가 팬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거나, 음악을 더 재미있게 이해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을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그의 메시지를 ‘척하면 척’하고 받아들이는 팬덤에서는 이벤트를 통해 더욱 서태지에게 열광한다. 음반판매 10만장 정도의 팬덤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서태지의 현재 수익구조와 활동방식은 뮤지션이 가장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서태지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와 팬들의 활동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도 전달된다. 여기서 대중과 서태지, 대중과 서태지의 팬덤 사이에서 간극이 생긴다. 서태지가 그의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할수록, 대중은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팬들은 서태지와 자신들 사이에 형성되는 공감대로 인해 더욱 결속력이 커진다. 물론 이는 요즘 열성적인 팬덤이 있는 연예인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서태지와 그의 팬덤은 17년이라는 역사를 가졌고, 서태지의 음악과 메시지는 지금 일반적인 대중의 취향과는 한 발 거리를 두고 있다. 서태지는 컴백 직전 MBC <음악중심>을 통해 자신의 컴백을 알리는 티저 영상을 방영했다. 이는 서태지가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을 발표했을 당시 음악 프로그램에 낸 광고와 같고, 티저 영상의 내용은 <Moai>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하지만 요즘 이런 식의 컴백 광고는 신선한 방식은 아니다. 또한 갈수록 자신의 세계, 그리고 순수한 음악의 세계로 빠지는(이에 대해서는 이후 서태지 앨범 리뷰에서 설명하겠다) 그의 음악적인 메시지를 대중이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서태지가 일반 대중과의 접촉을 피하고 오로지 팬들만 상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이 팬덤 이외의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팬덤만을 상대로한 마케팅과 프로모션은 결국 팬덤의 현상유지가 극대치가 될 수 밖에 없고, 대부분의 경우 팬덤의 숫자도 줄어들게 된다. 현재 서태지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그와 팬덤이 벌이는 일들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고, 이를 본 대중의 일부가 꾸준히 새로운 팬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열성팬의 숫자는 그대로 유지한채, 미디어를 통해 서태지를 접한 누군가가 그의 음악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실제로 서태지는 이번 앨범 활동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섰다. 만약 그가 자신의 존재를 감춘 채 음악만 전달하는 이벤트만 하거나, 공연만 반복하는 식이었다면 미디어는 그에게 갈수록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태지는 TV와 공연, 그 외의 이벤트를 적절한 시기에 벌려 자신의 활동에 다양한 변주를 줬다. 서태지는 컴백 스페셜과 연예정보 프로그램 출연, MBC에브리원 <스페셜 에디션>의 순서로 TV에 출연했다. 유세윤에게 놀림을 당하며 멋쩍게 웃는 컴백 스페셜 방송은 서태지가 ‘문화 대통령’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줬고, 연예정보 프로그램 출연은 그가 본격적으로 기존의 미디어 안에서 활동을 재개한다는 것을 알렸다.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자신의 지인인 신해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어떤 프로그램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서태지는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 안에서, TV를 통해 단계적으로 대중에게 접근했다.
또한 그 사이에 ETP 페스티벌과 서태지 오케스트라는 팬을 위한 가장 좋은 이벤트인 동시에, 서태지의 음악적인 색깔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장치였다. 그의 단독 공연보다 해외 록 밴드가 참여하는 ETP 페스티벌이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더 큰 화제를 모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두 공연은 MBC를 통해 방영됐으며, 지금도 UCC로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이 공연 영상들 만큼 그의 음악을 쉽게 설명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또한 서태지는 몇 차례의 공연 뒤 가요 프로그램 출연을 시작했다. 그는 팬덤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공연과 UCC로 음악을 알린 다음, 일반 대중의 세계로 들어갔다.
물론 그의 활동방식에 대한 호불호는 개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가 이어지며서 서태지는 끊임없이 미디어와 대중이 관심을 가질 ‘떡밥’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떡밥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대신 공연과 이벤트와 인터뷰로 만들어낸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서태지의 공연이, 또 다른 순간에는 서태지의 인터뷰나 인터넷 이벤트가 등장한다. 그 사이에 서태지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SBS <인기가요> 출연이 어색해지지 않았다. 물론 그가 대중에게 새롭게 각인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MBC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같은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서태지의 목표는 무조건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그것을 대중에게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환경이다. 그 점을 고려한다면, 서태지의 이번 활동계획은 그의 수익구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답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환경과 방향성을 유지한채 천천히 대중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서태지의 이번 앨범 활동은 완벽한 성공은 아니다. 그의 프로모션 계획은 잘 짜여 있었지만, 몇몇 부분에서 변화한 음악 시장과 미디어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매체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와 별개로, 서태지의 조선일보 인터뷰는 그에게 효과적이었다. 조선일보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그의 인터뷰를 실었고, 조선일보의 매체 영향력은 그의 발언을 최대한 많은 대중에게 퍼뜨렸다. 또한 조선일보는 어쨌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신문이다. 다른 매체에서 “조선일보하고만 하겠다”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인터뷰 대상이 몇 개의 스포츠 신문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후, 서태지는 몇 개의 스포츠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스포츠 신문과 신생 인터넷 매체들이 무한 경쟁을 하는 지금, 이런 선택이 다른 매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분명하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 없지만, 서태지가 스포츠 신문과 인터뷰를 한 뒤 연말까지 몇몇 인터넷 매체가 서태지에 대해 어떤 기사를 썼는지 확인해보라.
또한 ‘휴먼 드림’을 내세운 연말 활동은 현재 음악 시장의 속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쫄핑크 댄스’로 대중도 따라할 수 있고, UCC를 통해 널리 서태지의 음악을 알릴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낸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서태지는 ’휴먼 드림‘으로 활동하기 몇 개월 전 <Moai>를 발표했고, 같은 앨범의 노래로 충분한 프로모션을 했다. 또한 그는 KTF CF와 서태지 오케스트라 공연을 진행할 때 쯤 이미 신곡 ’버뮤다‘까지 발표했다. 음반 위주였던 과거에는 싱글의 동시 히트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타이틀곡과 후속곡을 발표할 때마다
그 곡에 집중해야 하는 싱글 위주의 시장이다. 서태지가 활동에 탄력을 받으려면 이미 몇 달 전에 공개 돼 신선함이 떨어진 ’휴먼 드림‘보다는 새 싱글 발표와 ’버뮤다‘에 대한 집중적인 프로모션이 필요했다. 아니면 아예 ’버뮤다‘를 아껴두고 ’Moai'에 이어 곧바로 ‘휴먼 드림’으로 활동했어야 했다. 후속곡 활동과 새 음반 발표의 싱글 활동은 그 집중도 자체가 다르고, 요즘 대중들은 한 싱글만 집중적으로 홍보해야 겨우 관심을 가진다. <Moai> 발표 직후와 달리, 연말 이후 서태지의 활동은 다소 집중력이 떨어져 보인다.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된 앨범 가격은 서태지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본인이 그 가격에 팔겠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팬덤이 집중적으로 앨범을 소비하는 서태지의 특성상, 팬이 몇 천원을 아깝다고 생각할 일은 없을 것이다. 싱글 두 장에 있던 수록곡에 두 곡을 더한 정규 앨범의 형태 역시 인터넷 음원 서비스가 활성화된 요즘에는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싱글까지 살 사람은 사고, 기다렸다 앨범을 살 사람은 앨범을 사면 된다(다만 싱글에만 수록되는 곡이 없어서 싱글의 매리트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서태지의 음반을 돈을 주고 사는 상품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들은 서태지의 음악 이전에 음반이 ‘비싸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할 것이다. 이런 인식이 지금 당장 서태지의 수익구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대중들이 서태지에게 접근하는데 심리적 장벽 역할을 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그 자체로 서태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음반을 프로모션에 맞추기 보다는 몇 개월이 늦어지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사운드를 뽑아내길 바라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가격으로 음반을 판다. 2009년의 서태지가 바라는 것은 무조건 1등이 아니라, 만들고 싶은 음악을 큰 어려움없이 만들 정도의 수익을 얻고,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줄 팬들을 유지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서태지의 컴백 후 활동은 실패보다 성공에 가깝다. 팬들은 오늘 발매된 정규 앨범을 사기 위해 음반점에서 줄을 서고, 미디어는 그 광경을 보도하며, 이를 통해 서태지의 음반 판매량이 대중에게도 이슈로 다가온다. 또한 복귀 당시만 해도 심심찮게 나오던 ‘장사꾼 vs 문화 대통령’ 같은 논쟁은 사라졌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 서태지에 관한 논쟁의 틀은 그의 음악적 완성도, 뮤지션의 사전 녹화와 편집권의 문제, 저작권 등 음악과 음악 산업에 관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각론에서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적어도 서태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판을 짰다.
물론 다음 정규 앨범에서 그가 어떻게 현재의 팬덤을 유지하면서 대중을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남아있다. 하지만 서태지가 지금 현재 뮤지션 중 하고 싶은 음악을 가장 제한 없이 하면서 수익을 얻고, 지지든 비난이든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컴백 아닌가.
글 : 강명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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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음악 이야기 없는 음악 산업 이야기 - 2. 서태지 : 외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