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서태지는 꽤 오래 전부터 이번 8집 앨범 컴백에 맞춰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하고 진행해 왔다는 거 알아?
신기주 (심드렁하게) 자기가 무슨 이벤트 남이야? 만날 앨범 낼 때마다 이벤트가 먼저야.
허지웅 하지만 베스트 앨범을 낼 때만 해도 이런 게 약발이 먹혔거든. 사람들이 막 앨범 사재기를 할 정도였거든. 그걸 경매 사이트에 고가로 올리고 그랬어. 그런 게 통했단 말야.
신기주 (갑자기 진지하게) 그게 왜 통했을까?
허지웅 서태지라는 아이콘의 무게감이 있잖아.
신기주 그 무게감은 조작된 게 아닐까?
허지웅 그건 보기에 따라 다르지. 지금 정말 슬픈 게 서태지가 이효리한테 완벽하게 밀렸다는 거야. 서태지가 앨범을 내기 전에 정말 여러 가지 마케팅 수단을 동원했잖아. UCC에다가 동영상을 풀고. 서태지는 매번 그 시기에 가장 앞서가는 미디어를 이용하지. 미스터리 서클도 만들었고, 코엑스 상공에서 착륙하는 우주선이며, 코엑스 앞에 불시착한 우주선 모형도 만들었고 말이야.
신기주 (하품하며) 그러니까 그거 타고 너네 별로 돌아가라고 좀 전해줘.
허지웅 심지어 코엑스 피라미드 광장에 UFO가 불시착하는 동영상까지.
신기주 (괴로워하며) 너네 별로 돌아가.
허지웅 그런데 UCC에 이효리가 뮤직 비디오 하나 올리니까 그대로 서태지가 묻혀버렸거든. 서태지 얘기가 쏙 들어가버렸어. 오늘 서태지 관련해서 기사 하나 나와서 봤는데, 전에 서태지 패러디 해서 시끄러웠던 사람이 있었잖아. 이재수라고. 그가 케이블에 나와서 그 땐 솔직히 뜨고 싶어서 그랬다면서 공식 사과를 했데. 이번에 8월 15일날 광복절에 공연할 때 가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고도 했고. 서태지는 이제 이런 식으로 밖에 이슈화되지 못하는 거지.
신기주 서태지는 이제 현재성이 없는 게 아닐까?
김지선 현재성이 없는 건 감수성 문제인 것 같아요. 사실 그런 마케팅 방식 자체가 이제는 좀 시대착오적이죠.
신기주 어쩌면 서태지는 늘 현재성이 없었던 게 아닐까? 미디어의 반응과 대중의 연쇄 반응 같은 것에 의해서 끊임없이 현재성이 조작되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거야.
X세대
허지웅 1집 때와 2집 때까지는 분명한 현재성이 존재했다고 생각해. 서태지가 가지고 있는 현재성이라는 건 현재적이지 않은 현재성. 새로운 게 통했다는 거지.
신기주 그게 통했어? 나는 잘 모르겠어.
허지웅 난 통했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당시에 서태지를 듣는 애들은 음악이 가지고 있는 참신함보다는 기성 세대와 자신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지점이 생긴다고 생각 했거든.
신기주 그 세대가 너야? 그 때 몇 살이었어?
허지웅 난 중학교 3학년 때던가 그래.
김지선 전 초등학생이었죠. 초등학교 2학년 때 서태지가 처음 나왔어요.
신기주 난 고등학교 말이나 대학생 초년생 때인가 그래. 서태지가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게 93학번, 94학번이잖아.
허지웅 (빈정대며) 그게 딱 X세대잖아. 난 너와 달라. 난 나야. 난 달라.
신기주 엑스 세대라는 용어나 그게 뜻하는 ‘난 특별하다’는 개념도 마케팅이 만들어 낸 산물에 불과했던 것처럼 서태지가 남다른 아이콘이 된 것 조차도 미디어나 자본의 메커니즘에 의해서였던 게 아닐까?
허지웅 난 그게 구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1집하고 2집 때는 서태지의 등장 자체가 마케팅의 산물이었다고 보지 않거든. 기획사가 창조하지 않은 마지막 아티스트 세대였다고 생각해. 그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거지. 지금 우리가 X세대나 서태지라는 아이콘이 사실 마케팅의 산물이었던 거야, 라고 평가를 하는 것 과는 별개지.
신기주 그게 실체가 있었을까? 나도 서태지가 처음 데뷔할 때 TV를 봤던 기억이 생생해. 임백천이 진행하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전영록한테 몰매를 맞았지. 너희는 음악 좀 더 공부하고 오라고 했었지. 서태지와 아이들은 사실 여러 음반사를 전전하다가 거기까지 흘러갔던 거잖아. 그것까진 자연 발생적일 수 있어. 근데 너도 늘 빈정대듯이 난 달라, 이런 식의 리듬을 갖고 자기를 규정짓는 X세대의 논리도 그렇게 따지면 자연 발생적인 거야. 그렇게 생각하거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마케팅이 그걸 자극할 수 있는 거지. 그게 정말 실체가 되려면 그 이후의 행보가 중요해. 미디어는 서태지한테 혁명적인 이미지를 입혔어. 천재의 옷도 입혔고. 서태지는 어느 정도는 전복적이고 어느 정도는 재능이 있었던 게 분명해.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입은 이미지와 옷이 그의 것일까. 입혀준 옷이 운 좋게 몸 사이즈에 맞았을 뿐이라고.
허지웅 닭과 달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난 당시 X세대라는 패러다임이 유효했다고 생각해. 나하고 기성 세대와 구별되고 싶어지는 자아가 모두한테 강했잖아. 서태지는 하나의 아이콘이나 이미지로 기능했고.
신기주 대중이 원했지. 그건 분명해. 하지만 서태지가 그걸 정말 갖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야 말로 아주 정확하게 X세대인데 난 뭐 그다지 난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던 거 같아. 세대론이란 건 속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면 세대의 실체가 증발하는 경우가 많아.
허지웅 하지만 당대엔 그게 필요했다니까. 그 때 오렌지족이라고 표상되던 것들이 있잖아.
신기주 (분노하며) 내가 딱 그 오렌지족이었다니까. 딱 보면 모르겠냐. 그 시절에 생각 없는 날나리로 취급 받았던 억울함을 생각하면... 누가 나한테 오렌지를 던지랴.
허지웅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을 것 같긴 해. 어쨌든 난 두 가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해. 자연 발생적이었다는 거와 당시 시대가 필요로 했다는 것. 적합하게 당대의 패러다임에 맞춰 떨어졌다는 거지. 그래서 나는 그 신드롬이 출발할 수 있었다고 봐.
문화 대통령
신기주 어쨌든 넌 서태지가 본질이 있었다는 보는 거지?
허지웅 그런데 3집부터는 본질이 사라지고 서태지가 시류에 굉장히 정교하게 영입하려는 애라는 게 드러났지. 3집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게 민족주의잖아. 난 정말 혐오스러웠거든. 김대중이랑 쿵짝이 맞으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대중 음악에 대해서 굉장히 찬양하고 말이야. 서로의 목소리가 맞아 떨어졌다는 거지. 나는 2집에서 민속 악기를 사용한 것까지 좋았어. 하지만 3집에서 그 뮤직비디오 보면선 치를 떨었거든. 뒤에 대형 태극기가 깔리면서 노래를 부르는 데 거의 초현실적이었어. 나는 사랑 받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거지. 근데 그 욕망 자체가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가 아니라 아이돌과 국가와의 관계로 확장되는 거지. 나는 국가 대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욕망. 정말 끔직하더라.
신기주 당시에 미디어가 서태지를 두고 문화대통령이니 이런 말을 썼었어. 그런데 그 때 심형래 감독도 신지식인이었지 아마?
허지웅 무슨 말만 나오면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붙었어. 김대중 정부하고 굉장히 잘 맞아 떨어졌던 거지.
신기주 서태지가 미디어를 이용하고 미디어도 서태지를 이용했지. 국가가 서태지를 이용하고 서태지도 국가를 이용했지. 이게 혼재되어 있는 건데. 문제는 뭐냐면 우리가 대중 문화의 아이콘을 이야기할 때 출발 선상에서 본질이 있었다고 해서 그 본질이 영원하다고 얘기하진 않는다는 거야. 대중 문화의 아이콘들, 예를 들면 밥 딜런이나 존 레논을 이야기 할 땐 그들이 출발선 뿐만 아니라 이후 행보에서도 야합하거나 영합하지 않았기에 유의미하다고 평가하지. 심지어는 생애를 관통하는 경우도 있어. 난 여전히 없었다고 보지만, 백보 양보해서 서태지도 처음엔 본질이 있었을 지 몰라. 근데 이후 행보를 보면 본질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허지웅 그건 나중에 시간의 무게가 사라진 이후에 할 수 있는 비평의 문제인 것 같아. 난 서태지하고 밥 딜런이 다른 건 , 밥 딜런은 끊임없이 난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서태지는 난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어했단 걸 거야. 지금까지의 행보가 계속 그래 왔어. 나는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고 싶다.
신기주 그래서 대중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서 신비주의 전략이다 뭐다를 쓴 거지.
허지웅 그래서 난 서태지가 좀 불쌍해. 대중과 미디어의 볼모가 된 거지. 그러니까 순수성에 대해선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아.
실체
신기주 난 매몰차게 말할 수 있어. 서태지는 본질이 없어. 당대가 소모하고 버린 아이콘이라면 모를까 문화 대통령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아. 우린 서태지를 이야기할 때 자주 그가 뮤지션이란 사실을 잊어. 음악을 논하기에 앞서서 서태지의 이미지를 이야기하지. 그게 함정인 거 같아. 사실 그의 음악성에 대해서도 논할 필요가 있다고 봐. 그 때 그의 음악이 굉장히 참신했던 걸까? 서태지가 ‘난 알아요’를 불렀을 때 힙합이나 랩을 쓴 거나, ‘하여가’를 불렀을 때 국악 리듬을 썼던 거나 신선했지만 참신했던 건 아니야. 그 무렵 많이들 고민하고 있었다고.
허지웅 랩의 원류는 언더 쪽까지 갈 것도 없어. 사실 대한민국에서 랩을 제일 먼저 한 것은 신해철이었거든.
신기주 심지어 홍서범도 랩을 했지. ‘김삿갓’ 알아? 랩이 하나의 흐름이었고 국악을 접목한 것도 시도되고 있는 거였고. 단지 서태지가 완성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어.
허지웅 서태지가 대중 음악에 성공적으로 국악이나 랩을 끌고 들어왔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거지. 새로운 음악적 요소들은 주류 상업적인 부분으로 끌고 와서 하나의 대세이자 패러다임으로 정착시킨 건 분명 ‘서태지와 아이들’이었어.
신기주 그러니까 그거야 말로 서태지가 음악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건 아니라는 거야. 음악사엔 좋은 음악 프로듀서들이 많았어. 그들은 뮤지션의 재능을 상업적인 결과물로 탈바꿈시켰어. 하지만 우린 그들을 천재라고 하지는 않아. 퀸시 존스는 대단한 프로듀서지만 천재 뮤지션은 아니야. 그런데 서태지의 음악이 남다르고 대단하고 서태지는 음악의 천재라는 것 역시 서태지 신드롬의 일부분야. 서태지가 음악성의 천재라고 평가 받지 않았으면 서태지가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없었을 거야. 그는 영웅이어야 했고 영웅한테는 비범한 재능이 필요하거든. 그게 신화지.
허지웅 난 음악 평론가가 아니라 음악성에 대해서 천재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확신을 못하겠어.
신기주 적어도 혁명적이진 않았지. 1,2집 때도, 그 이후에도. 하지만 그 때부터 지금까지 서태지는 늘 천재의 이미지를 팔고 있어.
김지선 서태지의 음악을 혁명적이다 혹은 혁명적이지 않다라는 부분으로만 평가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문제는 서태지의 음악이 전혀 전복적이지 않다는 걸 거예요. 서태지도 전복을 원했던 건지 잘 모르겠고요. ‘너바나’처럼 주류를 전복시키고 메인 스트림에 올라온 게 아니잖아요. 다만 주류에 영입하는 천재적인 능력이 있었던 거죠.
신기주 맞아. 전복이란 단어가 가장 정확한 단어인 거 같아. 다만 서태지 신드롬은 서태지에 대한 우리 각자의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싶어. 여기서만 해도 난 서태지가 전복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지웅이는 서태지가 전복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지선인 서태지는 전복 따위는 원하지도 않았던 문화 대통령이었다는 거잖아.
허지웅 난 그게 세대의 차이라고 생각해. 그 무렵 내가 입고 있던 대중 음악의 수혜라는 건 완벽하게 주류 음악권에 함몰되어 있었어. 서태지가 헐렁한 옷을 입고 나와서 공중파 프로그램에 나와서 랩을 부른다는 건 우리에게 전복적으로 보였어.
신기주 어쩌면 네가 나보다 더 X세대 같다. 어쩌면 지선이의 시선에 서태지는 몹시 기분 나빠 할 걸. 나는 몹시 전복적이었다. 혹은 전복적이고 싶었다. 그는 음악 면에서 끊임없이 첨단과 실험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했잖아.
김지선 사실 전복을 원한 건 사람들 아니었을까요. 서태지가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서태지 음악이 가치 없다곤 할 수 없죠.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센스 측면에서는 충분히 천재적이었다고 평가 받을 수 있겠죠.
슬픔
허지웅 어떻게 보면 여기서 지선이가 가장 서태지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세대이기도 한데. 내가 서태지라는 텍스트를 가지고 흥미를 가지는 지점은 사실 이런 거야. 아까 이야기 한 것의 연장선상인데.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끊임없이 보여줬잖아. 그 시대에 적합한 방식으로. 당시 서태지의 은퇴라는 게 굉장히 충격이었어.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욕망에 충실하고 싶었던 하나의 전략이었던 거지. 그래서 난 지금 그 지점에서 서태지가 토스카 광고에 나와서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 초현실적이야. 불쌍하다기 보다 초현실적이야.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대중 문화의 아이콘들은 ‘나는 네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했어.
신기주 1990년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렇게 서태지에 열광하던 세대에 나도 포함되는데 말이야. 토스카 광고를 찍는 서태지를 보고 난 무심했어. 그냥 난 그냥 그럴 줄 알았어.
허지웅 그건 너무 예언가적인데.
신기주 어느 지점에서 서태지에 대해 기대하지 않게 됐달까. 지루한 동어 반복처럼 느껴지는 거지.
허지웅 나는 지금의 서태지를 이야기할 때 어느 지점에서 순수하다고 생각하거든. 지금 하고 있는 마케팅 조차도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순수하잖아.
신기주 그건 순수가 아니라 자아도취가 아닐까. 그게 감수성의 문제란 거지.
허지웅 그게 이젠 주류 대중 음악의 아이콘으로서의 자리를 포기하고 자기의 기존 팬덤층이라도 지키겠다는 욕망이 보인다는 거지. 지금 이런 것들이 내가 보기엔 너무나 완벽하게 <로스트> 마케팅이거든. 7월 29일에 8집 앨범의 첫 번째 싱글을 발표하는 것도 이스터 섬에 얽힌 고대 신화 탓이래. 29일엔 종말의 이미지가 있대.
신기주 1990년대 중반은 모두가 꿈을 꾸던 시대였어. 아직 외환위기 전이었고 우린 돈을 쥐고도 쓸 줄 몰랐어. 타르코프스키가 10만 관객을 모으던 시절이었고. 한 손엔 <씨네21>을 끼고 영화와 음악과 문학을 읽으면 문화 대학생의 허영이 충족되는 줄 알던 순진무구했던 시절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으면 소용없어. 돈을 쓰면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해. 단돈 7000원을 쓰면서도 온갖 볼거리를 요구하고 음반 하나도 통째로 듣지 않고 조각 조각 한 곡씩 나눠서 소비하는 시대야. 이런 초자본주의 시대에 이스터 섬에 종말의 이미지가 무슨 말이야. 이효리의 몸매와 눈웃음은 즉각적인 쾌락을 주지만 이스트섬 얘기는 꿈과 상상은 커녕 오타쿠 정서야.
허지웅 29일이 화요일인데 그것도 버뮤다 삼각지대 있지. 거기서 배하고 비행기가 많이 실종됐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이런 신비주의 음모론적인 패러다임을 가져오는 것도 다시 주류가 되고 싶었으면 안 썼을 거야.
신기주 그건 순수 보단 착시 현상 같아. 얘기를 듣다 보니까 너네 별 보다는 너네 일본으로 돌아간다거나 너네 종교에 귀의하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 그는 과대망상 상태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만약에 말이야. 서태지가 소비자본주의에 경도된 대중들한테 상상력을 심어준다거나 음악으로 길을 연다거나 뭐 이런 얘기까지 하려고 한다면 그건 종교야.
허지웅 과대망상도 사실 순수성이거든.
신기주 이런 식의 마니아 문화는 사실 일본에서는 통용될 수 있어.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잖아. 메인 스트림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이 거기에서 밀려 나면 다시 그 정점으로 돌아오는 건 불가능해. 기존 세력들을 끌어 모아서 그걸 유지하려고 해도 쉽지 않아. 그 세력 조차도 다른 메인 스트림에 합류되어 있거든. 그게 한국 대중 문화의 흐름이야. 그래서 한국 문화엔 마니아 문화가 없잖아.
김지선 말하다 보니까 그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과대망상에, 애정 결핍에.
허지웅 불쌍하지. 나는 서태지가 일종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 서태지가 은퇴를 한 게 그런 욕망이었다고 얘기를 했잖아. 나는 너희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욕망은 결국 마니아성에서만 통용될 수 있거든. 굉장히 마니아적 감수성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거고. 외계인이 됐지.
애정
신기주 너희한테 서태지는 뭐였니?
김지선 어렸을 때 서태지 사진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쓰고 이랬던 거 생각나네요. 저한테 서태지는 그냥 유행 같은 거였나 봐요.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긴 했지만 신드롬의 중심에서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받거나 하진 않았어요. 근데 이게 세대의 문제는 아닌 게 제 친구 중엔 지금까지 서태지를 대장이라고 부르면서 팬클럽 활동을 하는 친구도 있거든요. 신기한 게 서태지 팬클럽이라는 게 아직까지도 잘 돌아가고 있다니까요.
허지웅 나한텐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된 하나의 긍정의 기억인 것 같아. 체온을 가지고 있는. 난 그냥 서태지의 음악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 일종의 반항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 ‘패닉’의 노래 중에 ‘벌레’ 있잖아. 그 가사를 칠판에 빼곡하게 써 놨다가 선생님한테 두들겨 맞고 그랬거든. 나한텐 서태지가 그 이미지랑 정확히 부합해. 내가 서태지 노래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내 맘이야’ 거든. 그런 거였거든. 내가 이 음악을 들으면서 기성 세대와 구분되고 있고 기성 세대에게 도전할 수 있는 무기를 소유할 수 있구나. 이런 느낌으로 서태지를 소비했던 것 같아.
신기주 나한테 서태지는...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영웅. 언론도 떠들어 대고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니까 서태지가 대단한 것 같기도 해서 대통령으로 뽑아 놓았는데 쇠고기나 수입하고 산성이나 쌓고 이라크에 파병이나 하고 한미FTA나 하고 대연정이나 제안한 거지.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까 대통령이 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거지. 서태지는 나한텐 철저하게 실패한 대통령이야. 실패한 문화 대통령. 그런데 실패한 대통령이 다시 정치를 한데. 좀 잠자코 있어나 줬으면 싶다는 느낌?
허지웅 그래서 다시 순수성에 대해서 말할 수 밖에 없는데. 서태지가 처음부터 자연 발생적인 게 아니라 기획적으로 다가온 거였다면 이렇게까지 평가절하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사실 대중을 포섭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거 같거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자기 함정에 빠져서 마니아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건 역설 적으로 서태지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대중
신기주 난 궁금해. 도대체 왜 서태지는 순수하게 음악으로만 승부하지 않을까.
허지웅 그게 사랑 받고 싶다는 욕망이라니까.
신기주 넌 정말 서태지를 사랑하는구나.
허지웅 나는 따뜻하다니까.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면 밥 딜런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깨고 파괴하고 위악적으로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게 필요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 언제나 나를 사랑해 주는 너희들을 위해. 우리만의 추억을 위해서. 그런 판타지를 제공해 주고 있거든. 그 이미지에 부합을 하고 싶어하고. 나는 사랑 받고 싶어하는 극단적인 모습이거든. 애정 결핍 환자 같아.
신기주 난 서태지가 자아도취 환자 같아. 그는 끊임없이 음악 외에 어떤 장치를 가져왔지. 자기를 더 요란하게 포장하는 거야. 처음엔 미디어와 국가가 그럴 포장해줬지만 이젠 맨 얼굴로는 다닐 수 없게 된 거야. 서태지는 좀 더 과장해서 이야기 하면 미디어 퍼포머 같아. 앤디 워홀 같은 사람들은 그걸 통해서 자기의 이미지를 구축했지. 요즘 한국에도 그걸 흉내내려면 사람들이 있고. 하지만 앤디 워홀은 자신의 이미지에 도취되진 않았어. 이제라도 서태지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걸로 승부를 걸면 어떨까. 음악 말이야. 그렇다면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서태지의 음악이야 말로 현재성이 없어. 시대의 조류를 따라 움직이기 보단 음악만큼은 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잖아. 모순이야. 서태지는 내용 대신에 텅 빈 골격을 선택했어. 세월이 가도 상태만 더 나빠질 거 같아.
허지웅 서태지한텐 끊임없이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 근데 그가 정말 행복해지려면 빨리 땅에 내려와서 자기 모습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신기주 넌 정말 서태지를 사랑하는구나. 난 서태지가 사라져줬으면 좋겠어. 첫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거랑 비슷한 거지. 그냥 이대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1990년대에 서태지가 가졌던 문화적 파워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2000년대의 서태지가 자꾸 그걸 무너뜨려.
김지선 서태지가 사랑 받고 싶어서 그런 거라잖아요.
신기주 대중이 정말 한 순간이라도 서태지를 사랑했을까. 대중은 언제나 영웅을 원해. 대중문화는 대중이 원하는 신화를 제공해주고 돈을 번다고. 그 말은 대중은 언제든 자신들이 세운 영웅을 용도 폐기시키고 다른 영웅을 맞이할 수 있단 거야. 서태지는 분명 어느 시대의 영웅이었을 거야. 좀 컸지. 하지만 이미 대중은 새로운 영웅과 뮤즈와 함께 놀고 있어. 그게 대중문화의 생리야. 맞아. 대중은 못됐지. 그래서 뭐? 서태지도 노래 불렀잖아. ‘하여가’라고.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그가 좀 편해졌으면 좋겠어.
허지웅 난 서태지가 슬퍼.
김지선 (눈물이 글썽글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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