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들이 붓는구나.
오전에 등대콜을 부르는데, 두 번이나 근처에 차가 없다고 퇴짜를 맞았다. 결국 아파트 정류장까지 걸어나와서 택시를 잡는데, 택시 타는 곳에 홍수가 났다. 차 옆에 못 가고 우물쭈물거리고 있으니까, 아저씨가 후진해서 물기가 좀 덜한 데로 세워주셨다. **아세요? 그리로 가주세요, 하니 아저씨가 알긴 아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웃으신다. 과연, 안 막히면 오분만에 가는 거리를 이십분 걸려 겨우 왔다. 도로는 길이 아니라 물길이라, 아저씨가 모는 건 택시가 아니라 나룻배인양 출렁거린다. 나무가 끊임없이 휘청거리고, 비는 끝없이 쏟아지는데 겨우 도착한 사무실에서 커피를 탄다. 지인이 선물해준 핸드 블렌더로 커피 거품을 저으면 믹스 커피위로 거품이 소복하게 쌓이고, 커피 믹스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도 이럴 땐 약을 들이키듯 훌훌, 커피를 마신다.
한 때는, 캔커피고 커피믹스고 커피우유고 죄다 못 마시던 때도 있었다. 사탕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탕목걸이가 아니라 사탕만 봐도 기분이 착 가라앉을 때가 있었다. 둥그렇게 몸을 말고 어두운 방에 웅크려 오디오 볼륨을 키워놓고 울다가, 지치다가, 그래도 살아있으면 됐다, 그거면 됐다 그렇게 소원하던 때가 있었다. 소원이 그저, 건강하게 잘 있는 모습, 웃는 사진 한 장 그거면 된다, 그렇게 되뇌이던 때가, 있었다. 평생을 두고 그 소원을 빌어야 할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었다. 서랍과 책장에 다 몰아넣은 물건들처럼, 기억도 마음속에 밀어넣고 꽝꽝, 못질을 하듯 덮어두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기억이, 마음이, 그리움이, 서러움이 물처럼 스며나와 나를 적시고, 종래엔 익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립지 않은 척 하면, 언젠가는 정말 그립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었다-.
끝없이 비가 오는데, 먼 데 떠난 사람이 돌아왔던 11년 전 그 여름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 새파란 씨디를 안고, 비닐을 뜯던 게 벌써 두 손으로도 꼽을 수 없는 먼 일이라는게, 가끔은 서글퍼도 늘 고맙다.
그리고 난 이제 사탕을 까드득까드득 씹어 먹으며, 오디오옆 장에 그득하게 쌓인 씨디와 물품들을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상처에 새 살이 돋듯, 내 심장은 더 튼튼해질 것이고, 우린 오래오래, 때론 영원을 꿈꾸고 말하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돌아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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