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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RE]붸비들 주철환씨가 누군지 알아?-02년도 인터뷰

게재일 : 2009.09.26 (Sat) 10:55:59 PM

작성자 : 1

No. 709637 추천수 : 0 조회수 : 174

2002.10.14 주철환 교수 '심야' 인터뷰 - 돌아온 서·태·지

2002년 10월 13일 일요일 늦은 밤. 서울 시내 모 호텔 26층 객실에서 태지를 만났다. 검정 모자 밑으로 내비친 해맑은 소년의 얼굴. 방송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갓 스물 때나 만 서른이 된 지금이나 도무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난 알아요’ 가사 중에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라는 부분이 나온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담당 PD였다.)음의 고저가 없는 특유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그를 부르는 호칭 역시 처음 그대로 태지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그의 방송 데뷔 십 년째다. 반갑게 맞아주는 얼굴이 약간 여위어 보인다.

몸무게가 준 것 아닌가?
-57킬로다. 별로 줄지 않았다.

너무 얼굴 보기 힘들다. 신비주의 전략인가?
-(웃음)TV에 나와서 떠들지 않으면 신비주의인가. 자기 스스로를 우상화시키는 게 신비주의라면 난 거기 끼고 싶지 않다. 그러나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도 약간은 재미있는 것 같다.

태지가 없을 때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일들이 많았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이) 다 올 때가 되어서 온 것 아닌가. 연예기획사를 통해 가수가 입문하고 방송을 통해야 음악이 유통되는 일련의 과정이 기형적으로 변질되어 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또 반복될 것이다.

태지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1회성으로 팔기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게 문제다. (깊고 넓고 길게 보며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사실 그건 만드는 사람이 더 잘 안다.

태지가 꿈꾸는 음악세계가 궁금하다.
-처음에 그냥 좋아서 시작했지만 이젠 약간의 의무감이 든다. 우리나라 음악계가 다양하고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특히 언더 쪽을 서포트해 주고 싶다. 음악다운 음악을 만들어 세계음악 주류에 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시중에는 태지가 키우는 후배들도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그건 아니다. 개성과 실력을 갖춘 후배 중에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더러 있다.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디아블로나 레이니선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키운다는 건 맞는 말이 아니다.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것과 그들의 음반을 직접 제작하는 일은 다르다.

넘어가자. 방송 데뷔는 MBC ‘특종TV연예’로 알고 있다. 사실인가.
-아니다. 그 며칠 전에 방송된 KBS ‘젊음의 행진’이 더 먼저다.(태지의 확실한 유권해석이야말로 오늘의 ‘특종’이다)

데뷔 이전의 음악에 대한 태지의 호불호(好不好)를 밝혀라.
-음악에 빠질 무렵 들국화와 조용필이 들렸다.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같은 노래들이 좋았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듣고 “이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성이다”라고 느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언제나 뿌듯하다.

태지의 노랫말을 보면 상당한 수준이다. 음악을 안 했으면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손사래를 치며)절대 아니다. 난 책도 잘 안 읽는다. 그냥 직접 느낀 것, 그 중에서도 답답하다고 느낀 것들을 중얼거리듯이 적어본 것이다. 음악을 안 했다면 아마 장난감 가게를 했을 거다.

이유는?
-재미있을 것 같다. (재미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새로움과 재미야말로 태지를 끌어당기는 힘인 듯하다.)

데뷔음반의 머릿곡인 ‘난 알아요’는 밤이라는 시간을 경계로 떠나려는 자아와 안주하려는 자아 사이의 긴장이 잘 드러나 있다.
-정말 그런가? (한쪽에 있던 고재형 PD를 흘낏 쳐다본다. 그는 ‘난 알아요’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만든 사람이다. 그때 이후 십 년의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해석이 오히려 거창하다. 솔직히 ‘난 알아요’ 가사는 막 썼다. 일종의 습작이었다.

습작에 오히려 창작자의 감성적 히스토리가 더 곡진하게 배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할 말 없다. (이때 고재형이 혼잣말로 뭐라고 한다. 얼핏 듣기에 ‘태지에게는 천재성이란 게 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문이지만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들 중에 단 하나의 곡을 고른다면?
-(주저함 없이)‘슬픈 아픔’이다.

일반인에겐 낯선 곡인데. (“나는 몇 해 전인가 빛을 버리고 어둠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네”로 시작하는 노래인데 4집 음반에 실려 있다.)
-상관없다. 1집에 있는 ‘너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도 마음에 든다.

좋은 음악이란?
-목표나 의식을 가지고 만든 음악이 아니라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이 좋다.(가슴을 가리키며) 그냥 들었을 때 기분 좋은, 때로는 아려서 행복해지는 음악. 그런 음악은 늘 가슴에 꽂힌다. (그의 얼굴 위로 유쾌한 긴장감이 다시 살아난다.)

태지는 지금처럼 사는 게 즐거운가.
-보다시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단지 음악이 좋았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장르에 대한 편견은 없다. 다만 내가 먼저 신이 나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 미안하지만 팬들은 그 다음이다. 내가 해보니 이렇게 좋았다, 좋으니까 팬들에게 그 좋은 걸 선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물의 전달과정, 즉 비주얼도 생각하게 되고.

앞으로의 계획은?
-(단호하게) 없다.

계획하는 순간부터 계획의 노예가 된다는 게 싫은 것인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난 즐기면서 사는 게 목표다.

그래서 행복한가?
-몰랐는데 차츰 알게 됐다.

외롭다고 느낀 적 없었나?
-괴로울 정도는 아니다. (대답에도 라임이 있다. 과연 시인의 풍모다.)

결단의 순간이 많았는데. 조기에 학교를 그만둔 것도 본인의 결단 아니었나?
-중학교까지 다니면서 계속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서울북공고 건축과로 진학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음악을 하는데 이런 식의 학교수업이 왜 필요하지 하는 의문이 자꾸 들었다. 입학하자마자 그만두었다.

서태지를 추앙하는 학생 중에 자기도 그렇게 따라하겠다면?
-준비됐으면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무서운 말이다. 준비라니...)

삼십 년을 살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사람다운 사람이란?
-사람 같은 사람. 난 착한 사람이 좋다.

배신당한 적이 있는가?
-믿은 적이 없기 때문에 배신당한 적도 없다. 난 쉽게 상처받는 스타일이 아니다. 냉담한 편인 것 같다.(그러면서 냉담한 표정 한 조각을 흘린다)

-결혼에 대해서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나는 싫다. 도대체 함께 살겠다면서 도장찍는 일 자체가 기분 나쁘다. 묶여 있어서 생각이 압도당하는 게 싫다. 아마 결혼은 안 할 것 같다.

사랑해 본 여자는 없었나?
-사랑이란 게 있을까 생각한다. 단지 호감이나 아껴주는 마음이 아닐까. 목숨 바쳐 하는 사랑이란 환상이나 환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함부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그에게 바라거나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술은 마시나.
-한 모금도 못 마신다.

담배는?
-공연 준비 때 이따금씩. 그러나 상습적은 아니다.

외국에 주로 머무는 이유가 있나?
-어디서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유롭고 싶어서다.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걸 못하며 사는 건 불편하다.

음반 발매계획은?
-아직 없다. 내년쯤엔 나오지 않을까.

태지는 뮤지션인가, 아티스트인가, 엔터테이너인가.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조금씩 모두 다. 하지만 셋 중에선 아티스트가 멋있는 것 같은데.

서태지 팬클럽은 좀 요란한 걸로 유명한데.
-태지에게 팬클럽은 없다. 단지 매니아들만 있을 뿐. 동호회가 여럿 있는데 개성이 유별나다. 그들은 찬미만 하는 게 아니라 비판도 날카롭게 한다. 이 노래의 이 부분은 좀 깬다, 바꾸는 게 어떠냐, 이런 식으로.

10월 26일의 공연에 대해서.
-새로운 형태의 공연문화를 보여주고 싶다. 음악 감상이 목적이 아니라 와서 미치도록 즐겁게 놀아보라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즐겨도 상관없다. 피곤하면 엎드려 잘 수도 있다. 1년 후에 ‘우리는 이 날을 기다렸다’면서 다시 오길 바란다.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공연이 될 것이다.

전야제도 있다던데.
-기획성 이벤트다. 미국에 있을 때 할로윈 축제를 보며 전율을 느꼈다.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의 무한자유. 이번 전야제에서 축제의 진수를 체험하기 바란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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